가을 아침의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하루 중에 가장 따뜻한 시간인 점심 이후에 어르신들과의 가벼운 산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과도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시간일 때 밖으로 나서게 되었죠. 그리고 같은 생활실을 사용하시는 동료 어르신도 함께 모시고 나왔습니다. 최근에 두 분 사이에 있었던 다툼과 화해 이후 서로를 부쩍 챙겨 주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잠깐의 산책일지라도 두 분께 작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면 좋을 것 같다는 직원들의 좋은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쓸쓸함과 공허함을 느끼는 A어르신의 새로운 기분 전환을 위해서라도 바깥나들이를 동행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기존에 어르신을 모시고 주로 산책을 갔던 공간에서 좀 더 반경을 넓혀 인근에 위치한 삼덕 공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해당 공원은 가까운 거리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늘 고려 대상에 머물렀었는데 좀 더 넓은 공간을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죠. 그래서 함께 나서는 사람들 모두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들도 마음이 들떠 어르신께서 쓰실 따뜻한 모자부터 무릎에 덮는 담요까지 신중하게 고르는 재미있는 일도 더해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잠깐의 외출이 예삿일이지만 두 분께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귀하고 소중한 시간일 수밖에 없었죠.
우리가 행복을 찾아 나서는 방식
밖을 나선 후 휠체어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시는 어르신께서 “이곳은 이렇게 변했네?”, “이 동네에도 이런 게 있었네?”라며 구경하기 바쁘셨습니다. 어르신께서 사방을 구경하시는 바쁜 눈과 밝은 표정, 그리고 감탄의 말씀을 지켜보면서 사람은 늘 햇빛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한 번 더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종일 되풀이되는 생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날이 좋은 바깥 공간에서 새로운 것들을 내 안으로 흡수하는 과정들이 기분의 환기를 일으키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동안 산책을 하신 어르신들께서 보이신 반응이 그러했기 때문이죠.
평소에 기력이 없으신 어르신께서도 산책을 나오면 길가 위에 심어 놓은 꽃을 만져보기 위에 애써 팔을 뻗어 손 끝에 닿게 해 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 무언가가 떨어지면 파장이 생기면서 물결이 멀리 퍼집니다. 밖에 나온 어르신께서 보이시는 모든 반응들이 긍정적인 파장처럼 느껴집니다. 고요한 일상에서 새로운 경험에 의해 생겨나는 반응, 그것이 행복한 기운으로 퍼져 어르신 곁에 가득 스며들기를 바라게 되죠.
공원에 들어서면서 어르신께서는 의자에 앉아 계신 여러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민 분들께서는 따뜻하게 인사를 받아주시며 반갑다는 말씀으로 맞아 주셨죠.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주시며 인사를 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을 뵙고, 과거에 가게를 운영하며 방문해 주는 사람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살아오셨다는 어르신의 말씀이 단번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르신의 지난 삶과 비교했을 때 생활양식이 달라졌지만 평소에도 작게나마 세상과의 소통과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습니다.
걷기 좋은 공원의 길 위를 한참 동안 어르신과 함께 밟아 나갔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시기라 바닥에 포슬포슬 나뭇잎이 깔려 있었는데 휠체어가 밟고 지나가는 바스락한 소리도 저희에게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자주 반복되어 쌓이면 어르신께 큰 기쁨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죠.
공원에 있는 모든 공간들이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남기면 좋을 만한 장소였습니다. 머물러 가는 곳마다 잠시 멈춰 어르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떨어진 낙엽을 주워서 어르신께 드린 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손에 꼭 쥐고 최선을 다해서 자세를 취해 주셨죠. 이 순간에는 불안함이나 근심 같은 것은 어르신의 마음속에서 잠시 가라앉기를 바랐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회복지사, 그 앞에 예쁜 모습으로 앉아 계신 어르신, 그때 나무 위에서 두둑 떨어져 흩날리는 가을 단풍잎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영화 같은 장면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때 어르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은 사라지고 기쁨으로만 가득하다면 지금의 시간이 멈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굉장히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함께한 직원들 모두가 “너무 좋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이런 순간을 일상처럼 누리실 수 있도록 늘 신경을 써 드려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죠. 이처럼 좋은 시간을 다양한 곳에서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삶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건강 상황을 고려해서 1시간 이내의 산책을 마치고 며칠 후에 또 나들이를 함께하자는 약속을 드리며 돌아왔습니다. 그날 어르신께서 좋은 의미로서 피곤하고 고단하셨기를, 그래서 두 분께서 밤에 잘 주무실 수 있기를 바랐는데 실제로 별 탈 없이 평안한 밤을 보내셨다는 요양보호사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짧았지만 작은 일정이 어르신의 긴 하루를 채워주는 것은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배우게 되었죠.
크고 작은 고민과 걱정은 살아가는 동안 의지에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에게나 생기며 어르신께도 예외는 아닙니다. 완벽하게 떨쳐내도록 하는 것과 해결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수없이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의지할 수 있다면 다른 것으로 어려움을 지워 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르신께서 저희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는 것에 있어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힘들어하는 어르신을 위해 머물고 계신 이곳에서 일상과 행복을 찾으실 수 있도록 작은 만족을 꾸준히 심어드리고 싶습니다.
가령, 어르신께서 기관에서 진행하는 예배에 참석하신 후에 목사님의 개별적인 축복 기도를 기다리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희는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아 함께 기도를 올립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르신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늘 함께 하겠다는 뜻이 어르신께 전달되어 혼자가 아니라는 정서적인 위안을 얻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어르신과 함께하는 날까지, 어제를 떠올리며 오늘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게 되는 매일을 보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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