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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더 큰 힘이 있습니다 (1부)

최종 수정일: 8월 5일


어르신들과 익숙한 공원에 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카페나 쇼핑 센터처럼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공간에도 함께 가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꼭 특별한 장소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어르신께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르신과 함께 새로운 곳으로 나서는 일은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휠체어로 이동하시는 어르신께는 바닥이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인도가 조금만 좁아도, 작은 턱 하나만 있어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을 모시고 가기 전날, 먼저 이동할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길이 그날은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작은 턱 하나가 신경 쓰였고, 좁은 인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평소라면 빠르게 지나갔을 길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휠체어가 지나가기 조금 불편하겠다.’

‘이 턱은 생각보다 높네.’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 길이 더 안전하겠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빠른 길보다 안전한 길을 먼저 찾고 있었습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더 넓은 길을, 더 편안한 길을, 어르신께서 안심하고 이동하실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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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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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팀원들과 동선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어르신들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셨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안전하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들이를 다녀온 날이면 그날의 모습은 사진과 함께 보호자님께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어떤 곳에 다녀오셨는지, 어떤 표정을 지으셨는지, 어떤 풍경을 보셨는지.

직접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산책 사진을 보내드린 어느 날, 한 보호자님께서 예상하지 못했던 긴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 ©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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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님께서 사진 속에서 발견하신 건 단순한 야외 활동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직접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하는 시간에도 어머니가 바깥 공기를 쐬고, 꽃이 핀 길을 지나며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보호자님 표현처럼 자식인 자신도 자주 해드리기 어려운 일을 누군가가 사랑과 정성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보호자님께 작은 안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답장을 읽으며 산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직원에게는 안전하게 준비하고 다녀온 외출이었지만, 어르신께는 바깥세상을 다시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보호자님께는 어머니의 평온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고, 직원에게는 그 시간을 무사히 함께했다는 조용한 보람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우리는 산책을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보호자님께는 안심을 전해드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루 일과를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어르신께는 일상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하는 노력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요.



©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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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잘 들리고, 가치는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아쉽다.

그런데 우리가 만드는 영향력은 늘 잘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현장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쳐야 할 이야기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불편했던 일, 놓쳤던 부분, 다시 확인해야 할 일처럼 아쉬움이 남는 장면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기 때문입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런 부분들이 먼저 입에 올랐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이유를 찾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모두 더 나은 돌봄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가 잘해낸 일들은 조용히 하루 속에 묻히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 ©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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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거부하는 어르신께 힘겹게 떠먹여 드린 한 숟가락으로 어르신의 컨디션을 지켰다는 것’

‘어르신의 신체를 늘 깔끔하게 정돈하고 살펴드렸기에 보호자님의 걱정을 덜어드렸다는 것’

‘과거에 있었던 일을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았더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렸다는 것’

잘못된 일은 비교적 눈에 잘 보이는 것과 달리,

돌봄이 만들어낸 좋은 변화는 그렇게 바로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저 평범한 일처럼 지나가고, 너무 작아서 서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어르신의 달라진 표정으로, 먼저 내민 손으로, 보호자님께서 건네시는

감사 인사로 뒤늦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일까요, 우리는 자신의 영향력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저는 그 부분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업무 강도가 높아서만 지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 사람은 더 빨리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모르고 지나갔던 좋은 변화들을, 존경하는 나의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살이 오른 어르신의 얼굴이 보여준 것

  • ©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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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변화는 때로 어르신의 얼굴에서 먼저 보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 요양원에 잘 적응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 많으셨던 보호자님이 계셨습니다.

입소 후 첫 면회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살펴보신 보호자님께서는, 어머니의 얼굴이 좋아 보이고 살도 오른 것 같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또 다른 보호자님께서도 어머니께서 편안히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보호자님께서 안심하신 이유가 단순히 겉모습이 달라져서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얼굴빛이 좋아지고 살이 오른 모습에는 어르신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다는 신호가 담겨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식사를 하시고, 쉬실 곳이 정돈되어 있고, 불편한 곳은 없는지 누군가가 살피고 있다는 시간이 몸과 표정에 조금씩 남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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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는 특히 식사 시간에 쌓입니다.

식사를 잘하시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습니다.

메디푸드를 잘 넘기지 못하시거나 식사를 거절하시는 어르신께는 한 번에 많은 양을 드시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님들은 시간 간격을 두고 수시로 조금씩 떠먹여 드립니다. 어르신의 상태를 살피며 기다리고, 넘기시는 모습을 확인한 뒤 다시 한 숟가락을 건넵니다. 직원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식사 도움일 수 있습니다. 생활 환경을 정리하고, 몸을 살펴드리고, 식사를 도와드리는 일이 익숙한 업무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복되는 일들이 어르신의 컨디션을 지키고, 낯선 공간에서도 하루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돌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호자님께는 자신이 없는 시간에도 누군가 어머니를 정성껏 돌보고 있다는 안심이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도움은 때로 너무 일상적이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손길이 어르신께는 건강을 지키는 일이고, 보호자님께는 걱정을 덜어주는 일입니다.

결국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은 한 사람이 오늘 하루를 편안히 살아가실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일회용 마스크 한 장보다 더 큰 것

© 선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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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어르신께서는 말씀으로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무언가를 계속 이야기하려 하셨지만, 명확하게 알아듣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때 두 요양보호사님께서는 어르신의 표현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종이와 네임펜을 가져왔고, 단어를 적고, 뜻을 묻고, 손짓과 발짓까지 동원해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몇 번을

다시 묻고 살핀 끝에, 어르신께서 원하신 것이 일회용 마스크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필요한 것은 마스크 한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장면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어르신께서 얻으신 것은 마스크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 잘 전달되지 않을 때 사람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여러 번 표현해도 알아듣지 못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말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르신께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두 선생님은 끝까지 알아듣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말이 어려우면 글자를 적었고, 글자로도 부족하면 손짓과 표정을 살폈습니다. 다시 묻고, 다시 확인하며 어르신의 뜻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끝에 “일회용 마스크를 원하시는구나”라고 알아차린 순간, 어르신께는 하나의 경험이 남았을 것입니다.


내가 제대로 말하지 못해도, 누군가 내 뜻을 알아주려고 애쓴다는 경험입니다.


그 뒤 어르신께서는 자신의 말을 알아들어 준 직원들에게 더욱 의지하며 이야기를 건네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변화가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두 선생님께서 찾아드린 것은 마스크 한 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르신께 남은 것은 그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내 말을 포기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구나.”


신뢰는 거창한 사건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려는 몇 분의 기다림, 한 번 더 확인하려는 질문, 포기하지 않는

시선 속에서 조금씩 쌓입니다.

그날의 돌봄은 제게 그렇게 보였습니다.


일회용 마스크 한 장을 찾아드린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뜻을 다시 표현해도 괜찮다고 

느끼게 된 순간으로 보였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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