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이 처음이라 불안한 치매 부모님이 잘 적응한 이유가...(5)"에 이은 마지막 글입니다.
Q.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시도하고 있는 변화가 있을까요? 혹은 앞으로 우리 기관은 요양보호사님과 함께 어르신을 위해서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 지 말씀해주세요.
요즘 저희 요양원 내에 근무하고 있는 여러 종사자분들은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존에 하지 않았던 다양한 것들을 조금씩 시도해 보려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아무래도 보호자를 통한 외출이나 외박을 하시지 않는다면 실내에서만 생활하시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까 답답함을 느끼실 때도 많으실 거예요.
그런 어르신의 마음을 공감해 드리고자, 최근 들어서 프로그램 활동 수업을 진행할 때 저희 건물 야외 옥상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손으로 무언가를 꾸미거나 만드는 프로그램은 실내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노래를 함께 부르는 수업과 몸을 움직이는 레크리에이션 활동 수업은 날씨가 좋은 경우에 한해서 야외에서 진행합니다.
저희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님과 함께 어르신들을 안전하게 모시고 진행하고 있으며 잠깐 동안이지만 좋은 날씨를 두 눈으로 구경하면서 햇빛도 직접 쬐고, 바깥에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바람을 느끼며 어르신의 기분 전환과 답답함을 해소하시는 데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에 그치지 않고 조만간에는 어르신을 안전하게 모시고 가까운 공원으로 나들이도 가려고 해요. 물론 반드시 사전에 보호자께 야외 산책에 대한 취지와 일정을 설명드리고 동의를 얻은 후, 사전 안전 점검을 마친 뒤에 실행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르신께서 기관 안에서 여러 사람들과의 공동생활을 보내고 계신데 이는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적응하는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양원에서 저희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드림으로써 편리한 좋은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인 만족을 채울 수 없는 부족한 부분도 당연히 있겠죠. 그러다 보니 저희가 모든 것을 다 해소해 드릴 수 없음에 매 번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어요. 그러나 어르신을 생각하는 저희의 마음을 모아서 계속해서 실천해나가는 작은 변화들을 통해 어르신의 삶의 질을 높여드리고 삶의 감각을 여전히 느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어요.
Q. 어르신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일을 공유해주세요.
요양보호사 A :
"치매를 앓고 계셨던 여자 어르신께서 댁에서 생활하시다가 우리 요양원에 입소를 하셨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처음 입소하신 날부터 저희 요양보호사에게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해주셨지만 오시고 나서 며칠 동안은 요양원이라는 공동생활 환경에 낯설어 하셨고 혼자 방에 계실 때는 굉장히 우울해하시기도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어르신께 기분 전환을 시켜드릴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옆 생활실에서 지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옆방으로 모시고 갔어요. 그런데 어르신들께서 서로 인사하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반가워해주시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데, 오랫동안 이야기의 장을 펼치는 모습이 마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입주민들의 대화를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웃음이 나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어르신들께서 서로 간에 불편해 하실거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사실 근무하면서 그런 화기애애한 모습을 오랜만에 보기도 해서 그렇고요. 아무래도 어르신께서 몸이 아프고 불편하니까 본인의 생활실에서만 주로 계시려고 하다 보면 같이 생활하고 계시는 어르신들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실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사실 몸이 아프고 인지 능력이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요? 제가 그걸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그런 점에서 어르신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어요. 이 작은 에피소드가 저에겐 큰 기억으로 남아요. 앞으로도 저는 어르신이 이곳에서도 여전히 따뜻한 온정을 느끼실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려 해요."
요양보호사 B :
한 어르신께서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셨던 경우가 있었어요. 의료적 조치를 받으셔야 하는 불면증은 아니었지만 밤에 오랜 시간 동안을 침상에 앉아 계시다가 늘 어렵게 잠에 들곤 하셨죠. 어느 날은 밤에 저 혼자서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어르신께서 휠체어를 타고 바깥으로 나오시더니 제 옆에 있어도 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보통 때 같으면 얼른 주무셔야지 다음 날 낮에 피곤하지 않으실 거라고 말씀드렸겠지만 어르신께서 항상 늦은 밤까지 침대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계신 걸 아니까 그날만큼은 유독 어르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어르신의 밤을 좀 특별하게 채워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두가 잠든 밤에 저와 어르신은 거실에 앉아 조용히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치 야심한 밤의 학교 기숙사 안에서 몰래 이불을 덮고 친구와 소곤 소곤 떠드는 학생들처럼 소소한 일탈을 즐기는 새로운 기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날 어르신께 전해 들은 이야기 중, 젊은 시절 오빠가 구해다 준 수박을 동네에 있는 정자 마루에서 동생들과 먹은 게 생각이 난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집에 가서 그 말씀이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르신의 소중했던 옛 추억을 되살려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 수박 한 통을 구매해서 출근하게 됐어요. 모든 어르신들께 나눠드리기 전에 해당 어르신께 제일 먼저 보여드렸죠.
“어르신께서 좋은 말씀해 주신 게 기억이 나서 한 번 사 와봤는데 오랜만에 드셔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참에 어르신 덕분에 먹어볼 수 있어서 감사해요!”라고 인사를 드렸죠.
그런데 어르신께서 너무 오랜만이라며 고맙다고 좋아해 주시는 거예요.
수박을 예쁘게 자른 후 거실에 모여 계신 어르신들과 함께 맛있게 나눠먹었는데 해당 어르신께서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감사 인사를 전해주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뭉클해지기도 하고 어르신께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저희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과 어르신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들을 합치게 되면 전부 사랑이라는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해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 정신을 충실히 발휘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날 어르신과 선선한 밤하늘 아래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친구 같았던 시간처럼,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귀엽고 소소한 일탈 아닌 일탈을 언제든지 함께 나눠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드리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계신 보호자분과 앞으로 입소를 고려하고 계신 어르신 및 보호자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곳에 근무하고 계시는 요양보호사 동료 선생님들과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서로 나누다 보면 항상 저희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느껴지는데요, 바로 저희는 누구보다 어르신들을 좋아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선생님들께서는 성격도 다르시고 각자가 잘하는 부분도 달라서 서로 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그런 다양함들이 존재하는 가운데서도 단연 빛나는 것은 어르신을 사랑하는 마음 같아요. 어르신은 저희가 전문 돌봄 서비스를 드려야 하는 대상자이시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서로 정을 쌓아가면서 사랑을 함께 나누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가족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분들께서 오히려 저희를 기쁘게 해주시는 경우가 많으니 이에 대해 요양보호사님들 사이에서 서로 같은 감정을 느끼신 게 아닐까 싶어요. 어느 날은 치매를 앓고 계신 한 어르신께서 일하는 저를 가만히 바라봐 주시다가 한 말씀을 건네주셨어요.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야. 너무 고마워.”
그 한 말씀이 어쩜 그렇게 신기하게 느껴지는지 눈이 동그랗게 떠졌어요. 일하는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어르신만의 소중한 인사 같아서 그 말씀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요. 이 감사함을 잊지 않고 어르신들을 위해 더 부지런하게 뛰어다니고 싶어요. 혹시라도 저희가 실수하거나 세심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작은 일들은 곧바로 어르신께 불편함으로 찾아가게 되고 이 모든 것을 견디고 감당해야 하는 것도 저희가 아닌 어르신이기 때문에 항상 주의하고 다짐하죠.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시고 계시는 가족 보호자분들께서는 어르신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항상 많으실 거라 생각해요. 또한 어르신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 또한 저희가 감히 견줄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께서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을 잘 알고 있기에 보호자분들께서 어르신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기억하여 최선을 다해 돌봐드리고 공경할 수 있도록 약속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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