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도 가정집이다 보니 어르신들께서 생활하시는 방마다 고유한 특징과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면 어르신들께서 계시는 각 방들은 그저 몇 호실로 불리며 구분이 되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방마다 고유한 특색이 바로 떠오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어르신의 방에 대한 특징이 근무하시는 동료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공감할 때 더욱 확고해진다는 것입니다.
해당 방에 계신 어르신들께서 조곤조곤 웃음이 나는 말씀만 골라하시는 것 같다며 각자 본인이 겪은 일화에 대해 공유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분명 어르신의 방으로 들어갈 때는 조용히 들어갔는데 나중에는 깔깔 웃으면서 나오게 된다며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는 요양보호사님들 사이의 공감대는 비로소 그 방의 매력 있는 특징으로서 자리 잡곤 하죠.
요양원에서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어르신들께서 조용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 되어가면서 방마다 각양각색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간혹 어르신들께서 바깥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시다가 방에 들어가실 때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고 표현하시는 경우가 많은 데, 이때 함께 방을 사용하는 동료 어르신까지 같이 모시고 들어가야 한다며 까먹지 않고 식구를 챙기시려는 신기한 모습을 본 이후로 같은 방을 사용하시는 어르신들께서는 어떻게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집을 만들어가고 계신지 유심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OOO호, Code name: 사랑스러움 이곳은 꿀꺽꿀꺽 방, 혹은 에너지절약 방으로 불러주세요.
네 분의 여자 어르신께서 지내고 계시는 방이 있습니다. 네 분 모두 혼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요양보호사님의 전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와상 어르신들이시죠. 그러다 보니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어르신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의사소통은 어렵습니다. 말씀을 잘하시는 어르신이 있는 반면, 귀가 어두우신 어르신이 계시고, 기력이 없어서 오랫동안 잠에 드시거나, 말씀에 반응을 하지 못하시는 어르신께서 지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다른 생활실에 비해 고요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방입니다. 그런데 네 분의 어르신들께서는 각자 본인만의 특별한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르신께 반갑다고 인사를 드리면 두 배 더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러주시는 어르신에 웃음이 나고, 손을 잡아주면 잠이 잘 올 것 같다며 애교를 보이시는 어르신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순간도 있으며, 옆에 어르신께서 입 안에 사르르 녹는 초콜릿을 간식으로 드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도 하나만 먹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고 계시는 어르신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보니 두 분께 같이 나눠 드리면 사이좋게 드시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는 등 어르신들을 마주하는 나날들이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런데 어르신들께서 지내시는 방에서 제일 빈번하게 들려오는 독특한 소리마저도 사랑스러운 요소가 됩니다.
그 소리는 바로 꿀꺽꿀꺽. 소화 작용, 저작 기능, 연하 곤란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네 분 모두 메디푸드 혹은 환자영양식인 액상 음료로 식사를 대신하시다 보니 어르신께서 빨대로 빨아 드실 때 삼키는 소리가 납니다. 고요함이 가득한 식사시간인데도 집중해서 드시는 꿀꺽꿀꺽 소리는 유독 듣는 사람이 뿌듯해 지는 기분 좋은 소리입니다. 한편 어르신의 식사 소리를 옆의 어르신께서 들으시고는, “OOO어르신이 오늘은 되게 잘 잡숫네.”라며 그날의 안부를 확인하고 계시니, 이는 다른 어르신께 반갑고 안심이 되는 고마운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식사를 끝마치시거나, 새로운 기저귀로 교체를 한 후에는 어김없이 단호하게 외치시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불 좀 꺼줘!"
대낮이니까 방에 환하게 불을 켜보자고 꾸준히 말씀드려도 창문에 들어오는 햇빛으로 충분하니 켜놓지 말라며, 조명에 눈이 부시는 것을 싫어하시는 이 방의 어르신들께 재미 삼아 붙여드린 별명은 환경 지킴이가 되었습니다. 이토록 전기를 아껴 사용하시니 누구보다 앞장서 환경을 지키는 데 일조하신다며 어둡게 지내고 싶어 하시는 어르신을 늘 존중해 드렸는데 최근에는 어르신들의 방에 명예롭게 붙여진 새로운 수식어가 ‘에너지 절약 방’이 되는 재미있는 일도 있었죠. 그런데 이 방은 사실 그 어떤 별명보다도 앞서는 진짜 특징이 있습니다. 늘 조용함을 유지하는 방인데도 어르신들께서 서로에게 관심이 많고 배려하며 이해해 주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이 큰 방으로서 더욱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궁금해요.
방에는 각 침대마다 가림 막 커튼이 설치되어 있으며 어르신의 기저귀를 교체해드리거나 옷을 새로 갈아입는 것을 도와드릴 때 사생활 보호를 위해 잠깐 동안 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외에 경우에 이 방에서의 커튼은 활짝 열어 놓아야 합니다. 옆에 어르신께서 식사를 하시는 것도 지켜보아야 하고,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도 유심히 들어 보아야 하며, 옆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박수를 치며 잘 들어드려야 하는 등의 많은 이유가 넘쳐나기 때문이죠. 이는 어르신들께서 서로가 어떻게 지내시는 지를 너무나 궁금해하시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만큼 침상에서의 생활이 길다 보니 일상에서 지루함과 심심함을 이겨낼 수 있는 어르신만의 방식으로 주변에 관심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커튼으로 가려 놓는 것을 불편해하시죠. 사방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커튼을 끝까지 걷어 놓고 침대 뒤로 쏙 넣어드리면 맘에 든다고 좋아하시니 신경을 안 써드릴 수가 없죠.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어르신의 아름다운모습이 좋아보입니다
손을 맞잡고 잘지내시는 모습이 행복해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