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매일 어르신을 뵙고 하루를 함께 보내면서 어르신마다의 고유한 성향과 취향, 그리고 습관을 알아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서로의 가족보다 얼굴을 자주 보고 지내는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부터 어르신의 표정만 보아도 기분과 상태를 파악해 드리는 것이 가능해졌죠.
그렇게 어르신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르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는 이전의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니 매일 함께 지내는 사이라고 해도 어르신들께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신 속내와 표현하지 못한 걱정들을 알아드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말 안의 속담처럼, 관심을 드리지 않는다면 깊은 속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어르신께 관심을 갖고 꾸준한 소통을 하면서 어르신의 새로운 모습을 하나씩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르신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보겠다는 호기로운 다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쯤,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계셨던 A 어르신께서 여쭤보고 싶은 것이 많아졌습니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좋아하시던 어르신이기 때문에 어르신의 소중했던 과거의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밤에 어르신의 고성으로 인해 같은 생활실을 쓰시던 다른 어르신과 다투셨던 일도 있었기 때문에 현재 어르신께서 느끼시는 힘든 점에 대해도 알고 싶어 졌죠. 어르신께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다는 질문을 시작으로 반짝거리는 눈빛을 주시며 지난 경험담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때 참 좋았지.
학교 앞에서 음식 장사를 했는데 학생 손님들이 참 많았어요.
사람을 통해 받을 수 있는 힘이 있는데,
그런 기운을 받고 일했던 게 재미났던 것 같네.
나는 취미로 요가도 하고 교회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진짜 활발하게 살았던 것 같아.
근데 지금은 이렇게 된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어르신의 슬픈 심정은 과거와 달리 자유롭게 활동하며 살지 못하는 지금의 순간을 답답하게 여기셔서 마음에 맺히신 듯했습니다. 누구보다 활발하게 살았던 젊은 날은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갔고, 모든 날이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예전만큼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큰 공허함을 느끼시는 것 같았죠. 이때 듣는 사람의 반응이 숙연하고 무거우면 적막이 감도는 분위기로 변할 것만 같아, 젊었을 때 그만큼 힘들게 고생하면서 일하셨으니 지금처럼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누려보시는 순간도 살면서 한 번쯤은 있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께서 지금의 모습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이곳에 지내면서 불편한 점이 있으세요?
내가 살던 집이 아니라서 불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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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르신께서는 원하시는 소원이 있으세요?
새로운 집을 얻어서 그곳에서 살고 싶은 소원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내가 통 걷지를 못하니까 혼자서 생활하기는 어렵겠지...
어르신께서는 자신의 생활 보조를 요양보호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편안함이 있다고는 하셨지만 공동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이나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이 보일 때 무력감이 느껴져 속상하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요양원을 떠나서 나만의 집에서 살 수 있기를 원하는 어르신의 소원은 결국 일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하게 되었죠. 건강했던 예전의 삶이 그립기도 하며, 혼자서도 잘 지냈던 그때의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삶의 의미를 다시 되찾고 싶으신 뜻으로도 이해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어르신뿐만 아닌 모든 분들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립 생활이 불가능하거나, 호전되기 어려운 질환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밀착된 간호가 필요하셔서 입소를 하신 상황임을 고려해 본다면 혼자서 살아가는 생활은 실현에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어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남죠.
어르신께서는 여러 질환의 발병으로 인해 다양한 수술을 받으셨던 경험이 있고, 관절 및 골격근 질환에 의한 낙상 위험성으로 인해 혼자서 생활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요양원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양원에 입소하신 후 처음 접하는 거주 환경을 천천히 적응해 나가며 익숙해지는 과정을 보내고 있으셨죠. 그러나 어르신과 대화를 나눠보니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감정적 어려움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오는 고단함과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불안함, 그래서 수반되는 우울 증세, 잠을 설치는 불면증 등의 모든 요인이 어르신의 생활을 만족스럽지 못하게 하는 영향으로 작용했을 수 있으니까요.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셔서 동료 어르신과 서먹해지셨던 경우도 일상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르신께서 대화를 통해 내비치신 근심과 걱정을 마주한 이후로는 어르신이 밤에 잠이 안 와 속상하셔서 짜증을 내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좀 더 이해해 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추가된 안부 인사 한 가지는 어르신께서 잘 주무셨는지를 여쭤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 어젯밤에는 잠이 잘 오셨어요?
아니 똑같아. 잠이 안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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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오늘 하루 종일 어르신 졸졸 따라다니면서 정신없이 놀아달라고 해야겠다!
그럼 피곤해서 내일 아침 식사 시간까지 늦잠 주무실 텐데 벌써 큰일 났네요!
그거 좋겠다. 그러자!
사회복지사의 가벼운 말에도 호의적으로 받아주시는 어르신께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앞으로 어르신께서 이 공간에 생활하시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나가거나 행복을 느끼실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고 어떠한 마음가짐이 되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것을 해드릴 수 없다 할지라도 그런 상황에 위축되거나 주춤하지 않기로 했죠. 어르신의 옆에서, 그리고 함께 할 수 있어서 채워나갈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음을 믿기로 했습니다. 어르신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사소한 관심이 어르신의 힘든 고충을 알아드릴 수 있었듯이 평범해 보이는 관심이라도 크게 쌓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꾸준히 어르신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씀하게 하는 일, 그리고 집중하여 경청하는 일, 행동에 관해 큰 칭찬을 드리는 일, 속상할 때는 손 꼭 잡고 위로해 드리는 일 등 작지만 큰 힘을 가진 것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어르신의 의지할 곳이 되어 삶의 의욕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면 이와 같은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가을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날, 어르신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인근에 있는 안양 삼덕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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